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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PC게임/게임잡담

스톤에이지가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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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

 

스톤에이지의 추억 속 발자취를 따라

스톤에이지의 추억

segimal.blogspot.com

2003년부터 시작한 스톤에이지는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게임이 되어버렸고 서비스 종료한지가 4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종종 기억이 나는 게임이다. 내 인생 최고의 온라인게임으로 남아있다.

전성기 이후로 차츰 유저수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였고, 비주류게임이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그래도 매니아층의 꾸준한 사랑으로 버텨왔고, 이때문인지 오드유저들의 스톤에이지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야근도 안하는 날이라 블로그 글은 써야겠고, 그렇다고 쓸건덕지도 많지 않고... 보더랜드3는 패치후 부터 ㅅㅂ 뭐가 달라졌는지 픽하면 쓰러지는바람에 그냥 꺼버리고 운동가기전에 옛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넷마블의 캐쉬페트로 인한 밸런스 붕괴

넷마블의 캐쉬페트 정책은 정말이지 무자비했다. 넷마블은 2003년 7월 28일 평생 무료화를 선언하였고 2004년 2월 14일, 스톤에이지의 캐쉬샵이 오픈하였다.

이윽고 15일에는 사자소년, 울보소녀, 산적, 툰가 및 기존 캐릭터 변경권이 캐쉬아이템으로 등록되었고, 2004년 6월 25일에 가공소재까지 판매하며 새롭게 캐쉬샵이 오픈한다.

 

▲샤베르

그로부터 1년뒤인 2005년 2월 28일. 드디어 넷마블의 돈지랄의 서막이 올라간다.

바로 최초의 캐쉬페트 샤베르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샤베르의 성장률은 4.88에 그치며 밸런스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허나 간지나는 외모와 희소성으로 큰 이목을 집중시켰다.


▲킹고르

4월 1일에는 킹고르가 출시되었다. 5.14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성장률의 페트였지만 순발력이 낮고 공성과 방성이 비슷하게 분배되어 다소 얘매한 포지션의 페트여서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이후 5월 26일에는 카르카로돈과 델타르돈이 출시되었다. 무난한 성장률로 모가로스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밸런스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6월 9일에 본격적인 밸붕을 알리는 캐쉬페트가 등장한다. 바로 카우거다.

성장률 5.34, 공성2.39에 순성 1.63으로 공순 모두 스톤에이지에서는 최고수준이었고 속성도 지7 풍3이라 지10의 리비노와 비교하면 당연히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었다.

7월 13일엔 모가로스와 반기노를 위협하는 어마무시한 놈이 탄생한다.

바로 갈푸스다.

성장률 5.32, 공성만 무려 2.6으로 역대 최고치 수준에 가까웠고, 순성이 1.59로 그야말로 극강의 효율을 겸비하였다.

사냥, pk모두 화속성 탑급이었다. 당시 화속성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모가로스가 5.24의 성장률, 공성 2.28에 순성은 1.4에 불과했고 반기노는 5.02에 공성이 2.41로 비벼볼만했지만 순성이 1.2였다.

게다가 모가로스, 반기노 모두 초보가 포획하기 어려웠고, 육성도 상위권에 속했다. 참고로 호랑이류 펫의 대명사인 베르가, 베루루, 고르고르는 순성이 대부분 1.5를 넘어 준수하지만 공성은 1.9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2달 뒤인 9월 30일에는 샤크론이 출시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둠바로스, 카가로스가 출시되었다.

카가로스 역시 화속성 펫으로는 모가로스 따위 쳐바르는 효율을 가지고 있었다.

샤크론은 수10의 펫으로 공성 2.43, 순성 1.58로 그당시 대부분의 수속성 펫들을 관짝으로 보내버렸다.

이렇게 카우거,갈푸스, 샤크론 3대장의 시대가 열리게 되며 구펫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반기노, 얀기로, 리비노등은 꾸준히 주펫 포지션에 위치하며 높은 몸값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을 기점으로 넷마블은 엄청난 캐쉬페트들을 찍어낸다.


2006년
1월 2일 골드로비를 출시
2월 27일 쿠오코마를 출시
3월 10일 스피노 출시
3월 29일 다크론 출시
4월 28일 볼프 출시
5월 4일 파베로스 출시
5월 30일 히파 출시
6월 28일 디메트로돈 출시
7월 21일 아르카 출시
7월 31일 마루아치 출시
8월 30일 바우트 출시
9월 26일 구루마루 출시
10월 30일 레피온 출시
11월 24일 가챠형식의 키토류 알 출시
12월 22일 가챠형식의 가스트류 알 출시

1년동안 무려 15마리의 페트 출시.


필드페트라고는 베라라와 파이톤(그마저도 레벨 100이상 되어야함), 쿠아(쓰레기), 이벤트펫으로 하트링(쓰레기), 깜아리 홍아리, 쿠우, 슈우, 미니스, 발로스, 지라크, 타이판(쓸만한거 X, 성장률 밸런스 구데기)정도가 출시되었다.

3대장이 자리잡고나자 경쟁에서 밀려난 구펫들에 대한 의의가 제기되자 페트환생을 추가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페트 및 캐릭터레벨ㅇ 고레벨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컨텐츠였다...

 

이후 2007년 , 08년 이후 쭉쭉 넷마블은 캐쉬페트를 찍어낸다.07-08시즌에는 태왕사신기의 인기덕인지 청룡,주작,현무, 풍백이라는 사성수페트를 출시했다.

청룡은 당시 인기를 끌던 수속성에다가 공성이 2.7을 능가하여 역대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페트로 손꼽히며 엄청난 가격거품이 생겨났다.

판타지에이지로 거듭난 스톤에이지는 2008년 8월 1일,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바로 골드드래곤의 출시였다. 한정판매였던 골드드래곤은 2.53의 공성과 2.01이라는 순성으로 극강의 효율충에 속했다.

09년 1월 22일에는 블랙드래곤을 출시했다. 효율성면에서는 조금 떨어졌지만 비쥬얼면에서는 압도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퀄리티가 좋았던 펫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건 압도적으로 사기적이던 다른 드래곤류에 비교했을때의 이야기다. 09년 여름에는 어스 드래곤을 출시,



그리고 9월 28일에는 레드드래곤을 출시했다.

레드드래곤은 출시하자마자 주펫류로 단숨에 자리잡으며 다른 화속성페트를 밀어버린다.



그리고 2달뒤, 역대급 드래곤인 아이스 드래곤이 출시된다.

새로운 수속성펫에 목말랐던 유저들에게 단비같이 느껴졌던 아이스드래곤.

2.68의 공성으로 청룡에 버금가지만 1.49라는, 청룡보다 좋은 순성과 13.29라는 엄청난 내성으로 이미 샤크론따위는 관짝으로 보내버린지 오래, 사실 드래곤류가 출시되며 영원할거같던 3대장 페트들은 탑승용으로만 쓰이게된다.


이후 본드래곤이 출시되며 드래곤류의 정점을 찍는다.

결국 이 시기에 과열된 성장률 인플레이션은 초보들의 게임진입에 더더욱 높은 장벽을 선사했다.

초보들이 가지고 시작하는 기본 페트들은 고작해봐야 4.7~8대고 높아봐야 5.0대 초반이니말이다.

판타지에이지가 시작된 뒤로 서서히 유저들이 이탈하기 시작한다.

2011년 2월 24일에 넷마블은 과감하게 모든 캐쉬페트 판매를 종료한다.


하지만 이미 널리고널린 캐쉬페트들로 인한 성장률 격차는 해소될 수 없었다. 또한 한정판 펫들은 꾸준히 등장했다.

이런 격차를 발생시킨 페트들은 결국 드래곤류같은 한정판매 페트들이어서 캐쉬펫 판매 중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2011년 4월, 한정판으로 어린 드래곤이라고해서 말만 어렸지 기존 드래곤들과 다를바없는 미친성장률을 가진 페트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출처를 알수없는 디자인의 레드리온까지 출시하며 스톤에이지(석기시대)라는 게임의 근본과는 점점 멀어져 스톤에이지만의 아이덴티티는 흐려져만갔다.

2011년을 거치고 2012년에 접어들며 유저들은 눈에띄게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후 추가적인 캐쉬페트 업데이트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고2였던 내가느낀 당시 분위기는 세기말 분위기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던것 같다.

사람이 들끓던 무이굴 미아촌과 채석장에 사람이 아예 없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2013년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정점에 달한다.

불난집에 부채질을한 펫이 출시된것.

접은 유저들까지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에일리언 페트가 출시되었다. 이후 14년도에 접어들어서는 불과 2,3년전까지만해도 자리피기도 힘들었던 해와달서버의 샴기르마을에 사람들이 대거 사라졌다.

이때부터 '아 스톤에이지도 끝났구나'라는게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이 시기에는 형식적인 점검과 업데이트만 이루어졌을 뿐 추가적인 컨텐츠 업데이트는 추가되지 않아 모든 유저가 스톤에이지의 서비스종료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유저들의 수집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스톤에이지

 

무분별한 캐쉬페트 출시는 비단 밸런스의 붕괴만 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스톤에이지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페트수집이라는 컨텐츠를 말살한것이며, 유저들이 그토록 원하던 '수집욕구'를 빼앗은 것이다.

이 수집욕구는 스톤에이지를 처음 접하던 유저들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스톤에이지에 처음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강하고 멋지거나 또는 자신이 원하는 페트를 가지고 싶어서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드페트들은 잡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인기를 끌던 베르가, 베루루는 그나마 쉬운편에 속했지만 모가로스류나 얀기로 류는 초보자가 얻기에 굉장히 힘들었다.

이들을 얻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지루한 반복사냥과 엄청난 맵의 이동 등, 선행조건들은 초보들이 금방 이탈하게끔 만들수 밖에 없었다.

반면 이렇게 펫을 얻고자 똥꼬쇼를하는데 그 효율을 훨씬 더 뛰어넘는 캐쉬페트들을 버젓이 팔고있으니. 게다가 날이갈수록 캐쉬페트들의 성장률 증가로 어느정도 똥급이어도 구펫과 비슷한 수준이 되기도 했다.

이동, 전투방식의 피로함과 노가다성

스톤에이지는 턴제방식이다. 문제는 마을 외 전 지역에서 높은 확률로 전투가 걸린다. 포켓몬스터처럼 풀숲이나 동굴같이 특정 구간에서만 전투가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에 이동 자체가 굉장히 힘이들었다.

유료채석장도, 깃털도 없던 시절, 샴기르에서 걸어서 무이굴로간 뒤 가우린에 도착하여 가우린에서 또 다시 몇 개의 동굴을 지나 채석장에 도착하면 열쇠를 받고 다시 채석장 6층까지 올라가야하는 대장정이 이루어졌다.

그외 사냥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투는 클릭만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라 편하고 쉬웠지만 5명 파티를 기준으로 모든 캐릭터와 페트들이 공격모션이 이루어져야하기때문에 1마리 처치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이때문에 공격애니메이션이 긴 페트(쿠쿠같이)들을 가진 유저들은 강퇴를 당하기도 했다. 전투방식이 단조로운 점은 육성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귀찮음으로 다가왔다.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수도 적지않았기때문에 노가다성도 한몫했다.

초보들을 배려하지 않은 시스템

스톤에이지에서 무자본은 가능했지만 이 역시 어느정도 게임사정을 아는 사람에 한해서였다. 나같은 경우에는 별과바다서버로 옮겼을 당시 페트푸드를 하나씩 만들어 팔아 자본을 만들어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나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은 이조차도 불가능하다. 어디서부터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공략보고 막연하게 하다보면 유료채석장에서 덜컥 막힌다.

당시 채석장 6층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없애려는 넷마블의 시도였지만 되려 누군가에게는 큰 벽이되어버리고 말았다. 유료채석장 비용은 단돈 11,000스톤.

하지만 스톤에이지는 사냥할때마다 돈을 얻는게 아니었고, 고기도 고작해봐야 2,30원에 아이템창은 15개에 불과했다.

템겹치기도 불가능했으니, 사실상 초보가 시간들여 돈모으는건 불가능. 퀘스트 조차 돈을 정말 야박하게 주었다.

게다가 다중클라까지 선언하며 초보들에겐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자본이 있는 유저들은 다중클라로 홀로 파티를 이루고 사냥하였기 때문. 이때문에 갈수록 초보자 사냥터에서 파티 찾기란 힘들게 되었다.

기존 유저의 편의를 생각했지만 게임의 미래가 될 신규 유저 유입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아쉬웠던 PK

스톤에이지의 꽃은 듀얼이었다. 주말저녁 들끓는 투기장은 초보들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바글바글대며 자신이 애정껏 키워온 페트들로 듀얼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어렸던 나에게 그들은 이 게임을 하게만드는 동기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듀얼은 기본적으로 유저가 죽으면 페트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캐릭터가 살아남아야하는게 관건인데, 레벨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캐릭터와 페트들의 능력치는 천차만별이 되어버린다.

캐릭터에 대해 어느정도 데미지 감소같은 밸런스가 적용된것도 아니라 사실상 캐릭터는 물몸에 가까웠다. 이때문에 다채로운 전략을 보기엔 힘들었고 그저 누가누가 더 능력치가 높은지, 운이 좋은지의 싸움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핵방치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부터 발생하던 핵문제. 스핵유저들이 필드 곳곳에서 제보되었고 아예 대놓고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자동사냥까지 겸비한 핵유저들이 온감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제보되었지만 넷마블 측에서는 이에 대해 잘대응하지 못해 사실상 핵유저들을 방치하게 되는 꼴이 되어버렸다.

13~14년도에 이르러서 사실상 정기적인 점검만있던 시절에는 아예 핵유저들이 대놓고 핵을 사용하였고 돈복사도 터지며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게임내 상황은 악화되었다.

결국...

이처럼 게임 내외로 문제가 많았던 스톤에이지는 2015년 8월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나는 얼마뒤 입대를 했기에 그간 정든 내 캐릭터와 페트들과 작별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아 더욱 아쉬웠다.

시간앞에 장사없다지만 메이플은 빅뱅패치라는 개혁으로 기존의 육성의 노가다성을 없애버리고 편의성을 대폭줄이며 진입장벽을 낮추어 현재까지도 국민게임으로 자리잡고있다.

스톤에이지의 라이센스가 언제부터 온전하게 넷마블의 것이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스톤에이지를 수정할 권리가 있었다면 기존 이동에 대한 편의성을 대폭 늘리고 pk밸런스 및 사냥밸런스를 통해 솔플도 가능하게끔해야했다.

보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아예 페트간의 티어를 정해놓고 단계적으로 페트를 포획하며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끔하였다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 중국의 스톤에이지는 모바일과 연동하고 초반부터 얀기로를 주어 육성에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다.

스팀에 나온 스톤에이지

스톤에이지가 스팀으로 출시되었다는 아주 반가운소식이 있었지만 대실망이었다. 소스만 스톤에이지일 뿐, 기존 스톤에이지의 엔진과 클라이언트가 아니며 완전 개발단계이기에 거의 플래시게임 수준의 모션등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것마저 아예 중국 스팀에만 있는듯 하다. 한글화나 우리가 원하는 스톤에이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보인다.

내가 스톤에이지 프리서버를 안하는 이유

사무치게 그리운 스톤에이지이지만 돌아갈수는 없는 노릇.

많은 이들이 정때문에 스톤에이지를 잊지못해 프리서버를 찾는 경우가 많다.

프리서버는 이미 2000년대 스톤에이지가 활발히 서비스 중일때도 있었으며(L서버가 유명했다), 서비스 종료시점에 이미 스톤에이지 클래식서버가 본서버보다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로는 니스서버, 프레쉬서버 등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나 역시 전역후 2017년 잠시 니스서버와 프레쉬서버를 해보았지만 얼마안가 접었다.

프리서버 자체가 저작권 위반에 해당하는 불법서버이기때문에 언제 종료해도 이상할것 없다는 생각에 플레이 의지가 한풀 꺾였다.

더더욱이 가장 활성화된 스톤에이지 커뮤니티인 디시 스톤에이지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유저들이 서버가지고 서로 심한 욕을하며 편가르고 싸우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다 뒤진 자식 부랄잡고 뭐하는 지랄인가.'라는 생각에 프리서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들어 결국 플레이를 하지않았다.

추억은 추억으로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자.

그때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지만 스톤에이지를 하며 언제나 그곳에 머무를수 없기에 남은 날들을 위해 차라리 공부라도 더 하자고.

한창 바쁜시기, 몸도 마음도 지칠때면 난 가끔 스톤에이지 온감에 들어가서 옛 스크린샷들을 뒤져보는걸로 만족하고 있다.

10년도 더지난 글들을 보고있으면, 거실에서 가족들이 스펀지를 보고있고, 나는 저녁밥 냄새를 맡으며 스톤에이지의 쟈루섬을 모험하던 그날이 떠오르는게 마음이 편해진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었을때의 풍경.

 

다시는 보지못할 아주 구시대적인 클라이언트.

이거 업데이트한 뒤 토요일 저녁에는 2배뛸려고 1서버 광클하기도 했었지... 대기시간이 어마어마했다.

이때문에 몇몇 사냥터는 아예 3서버에서만 파티가 활성화되어 있을정도.

 

채팅창내 결혼식장.

여러 방과 맘모스홀로 가족,부족원들끼리 이벤트하거나 정모하기에 좋았던 곳.

ㅈ목질이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스톤에이지를 못잊는 이유가 이런 커뮤니케이션때문이 아닐까한다.

 

사냥보다 채팅이 더 재미있었던 곳. 사람냄새 나던곳...

 

극 초반의 스톤에이지 홈페이지. 이때 집에 서브컴을 들였는데, 그게 윈도우 98이었다.

기사님이 설치해주시는걸 친구와 나는 구경하다가 '기사님! 스톤에이지 깔아도 대여!?'하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저때 나는 땅서버 유저였다. 이후 땅과 바람서버가, 별과 바다서버, 해와 달서버가 합쳐지고 불서버는 없어져버렸다.

 

고야산같아 보이는 곳.

이곳 위에 오르면 보이는 전경이 참 아름다웠다.

쿠링마을에서 보는 사이너스도 참 장관이었다.


비록 데이터쪼가리이지만 나의 모험심을 충족시켜주었던 스톤에이지. 처음보는 장소에서 처음 마주하는 몬스터들을 보며 모험심과 수집욕구를 불태웠던 시절.

 SA FOREVER

나의 10대 시절 추억이 가득한 이곳.

즐거울때, 힘들때 나와 같이해준 스톤에이지. 날도 추워지고 우울해지는게 가을을 타는것 같다.

20대 중반도 저물어간다.

꿈 많던 10대가 어느덧 20대도 후반에 접어들어 삶에 치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 나름대로 좋지만서도 그때가 그립다. 모두가 그립다. 선생님, 친구, 가족, 모두가..

 

 

스톤에이지의 추억 속 발자취를 따라

스톤에이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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